한상훈 · 남해연 선교사 (부룬디)

벌써 10년이라니?!

때는 바야흐로 2013년 1월 16일, 1년 만에 부룬디에 다시 돌아왔다. 23kg짜리 이민 가방 4개와 기내용 캐리어 2개를 들고나와 아내 이렇게 조촐한 우리 가족은 찜통 같은 부줌부라 공항에 도착했다. 2012년 초에 부줌부라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걱정보다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었지만, 막상 이삿짐을 싸서 정착하기 위해 부룬디에 도착하니,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지난 1년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는 섬기던 교회를 사임했고 아내 남해연 선교사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총회 세계 선교부에서 진행하는 선교사 훈련(당시에는 선교사 업무교육이라고 부름)에 지원하여 한 달간 합숙하면서 교육받았다. 살던 집에서 짐을 빼어 정리하고 갈 곳이 없어 선교사 게스트 하우스에서 잠시 지냈었다. 정이 많이 들었던 96년식 티코 자동차에 다른 주인을 찾아 주었고,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에서 ‘효과적인 부룬디 선교전략 연구’라는 주제로 석사학위 논문이 통과 되자마자 졸업식도 못 하고 바로 부룬디로 오게 되었다.

막상 10년 전 일을 복기해 보려니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분명히 위에서 나열한 것보다 더 많은 일들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아마도 부룬디 선교를 준비한 지도 11년이 넘어가고 부룬디로 이사 온 지도 10년이 넘어가니 부룬디에 처음 도착할 당시의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한다. 30대 중반이었던 내가 40대 중반이 되다 보니 체형도 많이 변했고, 성격도 좀 변한 것 같다. 무엇보다도 짧은 내 스포츠머리에 흰머리들이 눈에 띄게 생겨난 것은 좀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 살펴보니 나보다 두 살 많은 남 선교사의 머리카락에는 세월의 흔적이 더 강하게 남아 있었다.

부줌부라 광장의 모습, (왼쪽부터) 1966–2004–2013년

부줌부라 광장의 모습, (왼쪽부터) 1966–2004–2013년

부룬디에서의 일 년이 한국에서 2~3년 사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왜냐하면 부룬디에서의 생활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10년의 세월이 이렇게 무심하게 빨리 지나가는데, 부룬디는 예나 지금이나 거의 변한 게 없다. 부줌부라 공항도 예전 모습 그대로이고, 시내 모습도 사람들의 생활 수준도 거의 나아진 게 없다. 어떤 부룬디 사람이 페이스북에 1970년대 부룬디 시내 사진을 올린 것을 보았는데, 내가 부룬디에 오기 전 40년 전 사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번에, 어디에서 찍은 것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사진 속의 그 건물들이 여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현재 부룬디 시내에 떡하니 서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관청에서는 전기가 없어서 수기로 업무를 한다. 부줌부라 공항은 그나마 컴퓨터로 작업을 하지만, 육로 국경에서는 여전히 문서를 손으로 써서 발급해 준다.

사역지에 물이 안 나온 지 벌써 2주가 넘었다. 시내에 있는 우리 집도 보통 때 하루에 12시간이 넘게 물이 안 나온다. 외국 원조 기관에서 학교에 화이트보드와 빔프로젝터 등을 지원해 줬지만, 보드마카를 구하기 어렵고 살 돈이 없어서 여전히 콘크리트 칠판에 분필로 대학교 수업을 한다. 전기가 자주 끊기니 빔프로젝터 사용은 그림의 떡이다.

대형 마트는 고사하고 부룬디에서 가장 큰 마트가 한국에 동네 편의점 크기와 비슷하다. 정미소에 돌 고르는 기계가 없기 때문에 부룬디에 사는 모든 쌀에는 돌이 들어 있다. 따라서 밥 먹을 때 항상 조심해야 한다. 국민 1인당 연간 GDP는 265불로 10년 전보다 더 낮아졌다. (2021년 기준) 참고로 같은 기간에 UAE는 35,171불이고, 한국은 34,866불이다. 옆 나라 탄자니아는 1,104불, 르완다는 821불, 케냐는 2,129불, 그렇게 가난하다는 소말리아도 347불로 부룬디보다 경제적 상황이 나은 편이다.

**가난해서 **선교하기 힘들어요.

이렇게 가난한 부룬디에 살다 보니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미 한국에서 부룬디보다 풍요로운 삶을 누려본 내 입장에서 현지 사람들에게 더 나은 생활에 대한 희망과 비전의 메시지를 전하곤 하지만 그렇게 한들 전혀 더 나은 삶을 겪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소귀에 경 읽기인 것 같다. 부룬디는 아프리카 대륙의 내륙 한 가운데에 있다 보니 방문객이 많이 적은 편이다.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그냥 지나가기 위해 오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자기 나라에 오고 가는 외지인들을 보며 다른 나라가 얼마나 발전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하던데… 지금의 부룬디는 전혀 그런 방식으로 도전받지 못하니, 계속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폐쇄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부룬디 수도에 있는 가툼바 마을

부룬디 수도에 있는 가툼바 마을

일반적으로 국경이 자유롭게 열려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우,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은 더 잘 사는 나라로 이동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이런 관점에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부룬디로 이동하려는 사람들은 거의 없지 않을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룬디는 여전히 고여 있다.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어야 하는데 부룬디는 여전히 제자리에 있다. 그래서 여기 사람들은 변화와 혁신 대한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오늘 하루를 어제처럼 살고 있는 것 같다. 현재의 부룬디 사회가 아무튼 원시시대보다는 발전한 것처럼 보이니 그러면 됐다는 식으로 거기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부룬디의 발전은 매우 더디다. 더디다 못해 어쩌면 역주행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10년 전의 1인당 GDP는 310불 정도였는데, 지금은 265불이니 결코 무리한 해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가난은 상속된다는 말은 요즘 세상에 틀린 말이 아니다. 반면에,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점점 틀린 말이 되어가고 있다. 가난한 집에서 자란 아이들은 잘 먹지 못한다. 유·아동 시기에 잘 먹지 못하니 뇌 발달이 더디고 정서적으로도 불안하게 성장할 수밖에 없다. 가난해서 학교도 못 갈 형편이고, 학교에 다니더라도 두뇌 발달이 더디고 집중력이 떨어져 학업 성취도가 많이 떨어진다. 그러니 부유한 집의 아이들이 6년 만에 끝낼 초등학교 졸업을 가난한 집 아이들은 10년이 넘게 걸리는 경우가 많다. 학교 다니는 기간에 집안에 어려움이 생기거나 몸이 아프면 학교부터 그만두게 될 것이다. 앞서 말한 상황은 부룬디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내가 지부장으로 있는 NGO 텐포원이 지원하는 약 340명의 장학생 중 초등학교 6학년의 평균 나이는 한국 나이로 16세가 넘는다. 9학년의 경우 20세가 넘고, 고등학교 3학년의 경우 24살 가까이 된다.

이렇게 학업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중도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이 생긴다. 고등학교 진학률이 중학교 졸업생 중에 4% 남짓 된다고 하니 참담하다고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가난한 집 자식들은 이만큼 학교에 다니기 어렵다. 학교에 다니지 못하니 성년이 되었지만, 소득이 적을 수밖에 없고, 소득이 적다 보니 자녀들에게 충분하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지 못한다. 그래서 가난은 자녀들에게 상속이 된다.

트와족 어린이들의 모습

트와족 어린이들의 모습

이러한 가난은 복음 선교 사역에도 큰 장애물로 작용한다.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것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에 담겨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런 성경을 읽지 않고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부룬디에는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난하기 때문이다. 가난해서 초등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들려주는 사역을 할 수 있다 치더라도,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성경 말씀을 듣고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성경이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말씀을 통해 확인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신비주의적이고 영적인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몰려들게 된다. 그래서 아프리카 지역의 교회에는 영성, 치유, 은사, 예언 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문제는 거짓 예언자가 성령의 역사를 훼방한다는 점이다. 말씀에 의해 신앙의 중심이 바로 서 있지 못하니, 거짓 교사와 거짓 예언자를 구분할 능력이 부족하다. 사탄도 돌을 떡으로 만들 수 있고 병을 고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런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어마어마하게 크신 하나님을 이해하고자 하니 잘못된 신앙에 쉽게 빠지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는 결국 글을 몰라서 야기되는 문제요, 기초 교육을 받지 못해 논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지지 못해 생긴 문제요, 결국 가난으로 발생한 문제가 아닐까? 그러므로 가난은 복음 선교 사역에 큰 장애물임이 틀림없다.

**가난을 **끊어낼 있을까?

내가 부룬디 선교를 위해 후원자들과 함께 설립한 텐포원(TEN FOR ONE)은 2014년부터 저소득층 어린이들이 학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장학사역을 통해 돕고 있다. 그 숫자가 계속 늘어나서 최근에는 약 340명의 초, 중, 고, 대학생들이 텐포원 부룬디 지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 “한 번 개천에서 용 나게 해보자”라는 마음가짐으로, 부룬디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가난하지만, 그중에서 더 가난한 부모가 없는 가정, 편부모 가정, 장애인 가정, 극빈층 가정의 어린이들이 계속 공부할 수 있도록 학비와 학용품을 지원하고 동시에 전인격적인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을 매월, 학기별 진행하고 있다.

우리의 장학사역에는 한 가지 원칙이 있다. 낙제를 한 학생이 반복해서 다녀야 하는 학년에는 학비와 학용품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후원자들의 소중한 후원금을 중복으로 지원할 수 없다는 신념을 지키고, 더불어 최소한 조금이라도 공부할 의지가 있는 학생들만 지원하자는 의도 때문이다. 장학사역을 시작한 첫째 해에는 약 20%의 학생들이 낙제했다. 그래서 가차 없이 낙제한 학생들의 이름을 다음 해 장학생 명단에서 삭제해 버렸다. 공짜로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던 사람들은 선교사가 그렇게 매몰차게 지원을 끊을 줄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 매우 당황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