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 도우미 선교사 (카자흐스탄)

안녕하세요? 이렇게 지면으로 인사드리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희는 1996년에 부르심을 받고 두 차례 단기 여행과 여러 경험을 통해 주님을 뜻을 확인한 뒤 2010년부터 카자흐스탄에서 살고 있는 정직한, 도우미 가정입니다. 자녀로는 한국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큰아들과 체육학을 전공하는 둘째, 그리고 현장에서 저희와 함께 꿈을 찾아가고 있는 여고생 막내딸이 있습니다. 아내는 MK 학교에서 유치원 담임교사로 10년째 섬기며 교회 사역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중앙아시아는 여전히 제조업이 약하고, 석유와 가스 개발 사업을 제외하면 농업 중심의 산업 발전 단계에 있어 많은 현지인이 농업이나 건설업 쪽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농업을 통해 자립하고 지속 가능한 삶을 경영할 수 있도록 지도하며 교회 개척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슬람권은 사역자의 신분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삶과 실제를 보여줄 수 있는 직업을 갖는 것은 이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로 세워간다면 척박한 이곳 무슬림 속에 지속 가능한 교회를 세우는 데 좋은 통로가 될 것입니다.

일본의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는 '최량(最良)의 지식(智識)은 눈과 귀를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손과 발을 통해서 온다. 갈릴리 호수 어부 노동자에게 나사렛 예수가 위대한 복음을 의탁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라고 하며 손으로 일하는 가치를 말했습니다. 세계 복음화의 큰 장벽으로 남아 있는 이슬람을 넘기 위해 우리는 복음의 원초적 자세로 돌아가 삶에 깊이 뿌리 박힌 실제적 복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복음화율이 낮은 시골 지역으로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기에, 농업 공동체와 직업 학교를 통한 제자 훈련과 경제 자립을 위한 현실적인 도구들을 준비하여 생존의 어려움으로 시골로 들어가는 것을 기피하는 현지 사역자들에게 새로운 활로와 사역의 현장을 연결하는 통로가 되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현지 사역자들이 복음의 말씀과 함께 자립할 수 있는 경제 구조를 만든다면, 카자흐스탄에서 진정한 내륙 선교의 문이 열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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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농업 공동체 센터가 위치한 곳은 알마티 시내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농촌 지역입니다. 이 시골에서 만난 현지 성도들의 대부분은 중독자 출신의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에 마약 중독에서 현재는 알코올 중독으로 바뀐 B 형제는 저와 만난 첫 3년여의 세월 동안 반복된 술 중독으로 7번이나 병원에서 약물 치료를 받았습니다. 2년 전쯤 다시 술 중독에 빠졌을 때 그는 술을 계속 마시기 위해 돈을 찾았고, 돈이 없다고 하자 아내를 위협했습니다. 이웃에게 피신하여 늦은 밤에 도움을 요청하는 아내의 전화에 저는 ‘또…’ 라는 생각에 한숨부터 나왔습니다. B 형제는 중독 중에도 환상이나 꿈을 통해 신앙을 회복한 경험이 있었기에 소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실망이 컸습니다. 중독자를 돌보려면 일정 시간은 함께 숙식해야만 하는데, 졸업 후 처음으로 집에 온 아들과 보내는 짧은 시간을 모두 B 형제에게 쏟아부어야 했기에 지금은 갈 수 없으니 다른 형제에게 부탁하라며 불편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을 듣고 있던 막내딸이 울면서 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아빠! 아빠는 ㅅ교사잖아! 이 사람들을 도와주러 왔잖아! 가봐야지! 왜 못 간다고 해!”하는 딸의 말을 들으며 제 불편한 마음은 더 심해졌습니다.

아직 어린 딸은 아빠가 잠시만 다녀오면 될 거라는 생각에서 한 말이겠지만, 저는 최소한 1주간은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또 변화되지 않는 사람에 대한 반복된 실망 때문에 주저하게 된 것이었겠지요. 하지만 옆에서 울고 있는 딸을 보며 다시 힘을 내서 B 형제의 남동생과 함께 B 형제를 방문하여 밤을 지새우며 격려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후 1여 년 전쯤 B 형제가 여러 사람과 앉아서 마지막으로 술을 마시던 중에 개에게 코를 물린 상처가 아직도 남아있자 저는 이런 경고를 했었습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당나귀나 닭을 통해 사람들에게 경고하셨듯이, 개를 통해 너의 얼굴에 흔적을 남겨서 두고두고 기억하라고 하신 것이라고, 여기에서 변화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기회가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말입니다. 그의 아내도 남편의 10여 년 동안 반복되는 중독자 생활에 지쳐 이혼과 별거를 고민하였으나 주님 앞에 바로 서기를 몸부림치며 이 과정들을 견뎌내는 중이었습니다. 현재 B 형제는 성실히 가정을 돌보며 조금씩 변화된 삶을 살아내고 있지만, 저는 이제 B 형제를 신뢰하기보다 계속해서 일하실 주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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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현장에서 13여 년이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현지인들을 향한 마음이 조금씩 굳어져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변화의 열매가 보이기보다는 더 많은 요구와 필요를 위해 저에게 다가오는 것 같은 현실 때문이었습니다. 농업 사역을 함께 하는 Y 형제는 마약 중독자의 삶을 살다가 양계 사역에 헌신하게 된 친구로, 공동체 삶을 시작하며 기대가 많았는데 결혼 후 여러 현실적인 문제 앞에 다시 마약을 3번이나 하며 헌신해 온 양계 사역을 회피하는 모습에 마음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2022년 9월쯤에 Y 형제가 개인적인 빚과 가족들의 부양에 대한 부담으로 양계 사역보다는 건축과 관련된 개인적인 일을 하고 싶다고 얘기하여 처음 부르심과는 다른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서 갈등이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센터는 사역자를 위해 준비된 공간이므로 개인의 삶을 살아가겠다면 당장 떠나보내야 할 수도 있기에 1주간 기도한 후 다시 의논하기로 한 다음 날 아침이었습니다.

아내와 딸의 등교를 위해 현관문을 열고 나왔는데 좁은 복도 계단에서 비둘기가 퍼덕이며 탈출구를 찾으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저는 빨리 살려줘야겠다는 마음에 비둘기를 잡은 뒤 1층으로 내려와 바로 날려 보냈습니다. 그런데 잡풀이 우거진 울타리에 있던 고양이가 지쳐서 미처 날아가지 못하고 내려앉은 비둘기를 덮치려고 다가오길래 가방을 흔들며 발길질을 해 보았지만, 고양이가 좋은 먹잇감을 놓칠 리가 없었습니다. 살려주고자 날려 보낸 비둘기를 배고픈 들고양이의 입 속에 넣어준 꼴이 되고 만 것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저 새를 물고 가는 고양이를 향해 발길질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너는 영혼을 돌보는 사역을 하면서 어찌하여 상황과 형편을 깊이 살피지 않고 목적에만 연연하고 있느냐? 그 비둘기가 살기 위해 얼마나 퍼덕이며 출구를 찾았을지 생각해 봤니? 이미 지쳐 있는 비둘기를 고려하여 안전하게 살려줄 방법은 찾아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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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등교 시간이 얼마나 분주한 지 아마 학부모님들을 잘 아실 것입니다. 보호해야 할 비둘기의 상태를 확인하거나 안전한 방법을 찾기보다는 ‘그냥 날려 보내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움직인 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후 12월쯤에 방문 중이던 손님 한 분이 누군가의 공격을 받았는지 왼쪽 다리에 깊은 상처를 입고 날지 못하는 비둘기를 발견해서 치료를 위해 집안으로 데리고 와 약을 바르고 먹이를 주며 약 1주간을 보호했습니다. 그러자 비둘기는 활력이 넘치는 상태가 되었고, 뒷동산에서 날려 보내니 그대로 숲속으로 자유롭게 날아갔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이 두 비둘기 사건은 주님께서 실제 사건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현장 학습 같이 굳어진 제 마음에 녹아 들어왔습니다. 여러 일들을 겪으며 시야가 좁아진 저 자신을 돌아보고, 주위에 있는 현지 영혼들을 어떻게 섬겨야 할지 다시 한번 새롭게 결심하는 은혜의 경험이었습니다.